결정적인 순간은 지나갔는데 사과를 받거나 마음을 풀거나 하는 것들 모두 웃긴 일이다. 사과를 받아서 풀릴 일이었다면 사과를 요구했을 거다. 그런 게 아니었다. 순간이 지났고 뭔가 전체적으로 무너져 내렸다. 전화를 걸면서는 끝끝내 닿지 않길 바랐고 받으면서는 어떻게든 끊어지길 바랐다. 뭐가 어떻게 호전되길 바라지 않는다. 내일을 원치 않는다. 부모만 없다면 죽고 싶다. 책임져야 할 일은 딱히 없다. 이런 날들도 흔치 않을테니 더더욱.
어쩔 순 없으며 납득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좀더 의례적인 절차를 밟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은 한다. 생각만 한다. 그런 걸 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고. 뭐든 다 필요하고, 원하지는 않는다. 중요한, 중요했던 것들을 다 버리고 싶다.